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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문화원이 기획하고 제작한 지역문화콘텐츠 이미지, 동영상, 오디오, 전자책 제공
당시 집성촌에 거주하던 경주임씨를 만나 구술채록한 영상이다. 그들의 입을 통해 중랑구의 전통적인 마을문화와 지역의 변화상을 만나 사라지고 있는 집성촌의 역사를 생생히 보존하고 중랑구의 역사까지 엿볼 수 있는 가치 있는 문화 콘텐츠다.
혜원여중고 정문 바로 위쪽에는 왕릉만한 큰 무덤이 있었다고 한다. 양지말 사람들은 모두 다 그 무덤을 아기장수 무덤이라고 했다는 말이 있다. 아차산 아래 어느 농부가에서 아기장수가 태어났는데, 어느 날 보니 아이가 날개로 훨훨 날아서 천장에 붙어 있다가 다시 날곤 했다. 신고를 할까 고민하던 부부는 삼족이 멸하는 것이 겁이나서 고민하다가 아이가 잠든 사이에 아이를 죽였다. 그 순간 어디선가 용마가 나타나 큰 소리로 울면서 그 집을 돌다가 용마산 쪽으로 사라졌다. 이후 며칠 뒤 아기를 묻어주었던 그 무덤은 큰 무덤으로 변해있었다고 한다.
옛날 집이 아주 어려운 집의 여자가 시집을 갔다. 며느리는 시아버지와 지관이 하는 이야기를 엿듣고 좋은 산소 자리를 알게 되었다. 그래서 며느리는 시아버지가 계란을 가지고 오라하자, 계란을 묵재에 굴려버렸다. 그래서 계란이 울지 않았고, 지관과 시아버지는 그 자리를 쓰지 않기로 했다. 이후 며느리가 친정아버지한테 살며시 명당자리를 알려주었고, 며느리네 친정집은 웃대 할아버지 묘를 몰래 그 자리에 써서 부자가 되었다.
아차산 아래 동네에서 장사가 태어났는데 옛날에는 장사가 나면 부모가 몰래 묻어 죽이거나 숨겨서 멀리 도망가게 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 부모는 아기를 죽일 수 없어서 몰래 키웠다. 하루는 아기장수가 몰래 다른 동네에 가서 놀다가 바위에 무릎을 짚고 엎드렸는데 무릎을 짚은 자국이 바위에 파였다. 이 사건으로 인해 아기장수는 동네 사람들에게 발각되었고, 사람들은 아기장수를 죽이려고 했다. 아기장수는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결국 군사들에게 맞아 죽게 되었다. 그 이후로 해마다 중랑천이 넘쳤고, 손바닥 자국이 생긴 바위가 있는 마을은 검은 석탄가룩 날리는 곳으로 바뀌게 되었다고 한다.
면목동에 큰 연못(어기연)이 있었다. 그 큰 연못에는 큰 구렁이가 살았다. 구렁이는 용이 되어 하늘로 승천하려고 했던 구렁이인데, 암놈 구렁이에게 빠져 시간이 가는지도 모르고 있다가 도력도 쌓지 못하고 하늘로 승천하지 못해서 이무기가 되었다. 그러는 사이에 장자못에 있던 구렁이는 용이 되어서 이걸 본 구렁이가 성질이 난폭해졌다. 언젠가 마을에 가뭄이 들어 사람들이 발동기를 빌려와서 물을 펐는데, 물이 줄지 않아 이무기가 산다고 생각하여 제비를 이용하여 이무기를 잡았다고 한다.
옛날 산골에 이씨와 김씨가 살았다. 아랫집에 잘 살던 이씨와는 달리 윗집의 김씨는 먹고 살기가 바빴다. 하루는 김씨가 이씨에게 잘 사는 비법을 물어보았다. 그래서 이씨는 김씨에게 장에 가서 먹, 붓, 문창호를 사오라고 했다. 그래서 사온 문창호에 그림을 그리니 그리는 대로 원하는 것이 생겨났다. 결국, 이러한 소문이 포도청까지 들어가서 김서방, 이서방이 관아에 잡혀들어가게 되었고, 마지막 소원으로도 문창호에 그림을 그렸다.
옛날에 한 사람이 나무를 하루에 한 짐씩 해서 식구가 먹고 살았는데, 더 잘 살기 위해 나무를 두 짐을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그래서 두 짐을 해 놓고 한 짐을 시장에 팔고 돌아오니 나무둥치가 없어졌다. 이튿날 한 짐을 해서 나무둥치 속에 앉아 있었는데 갑자기 나무둥치가 하늘로 올라가서 옥황상제 앞에 가게 되었다. 옥황상제는 나무꾼에게 복이 그 만큼 밖에 안되어 나무를 한 짐만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다 나무꾼은 엄청 큰 복덩어리를 발견하여 복덩어리를 석숭이가 태어나기 전까지 빌리게 되었다.
옛날에 한 동네에 꿈 해몽을 잘하는 할아버지가 있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할아버지를 찾아가 거짓말로 꿈을 꿨다고 했다. 그래서 할아버지는 꿈에 대한 해몽을 해주었다. 거짓말 꿈이었지만 실제로 해몽을 받아온 대로 이루어졌다. 그래서 남자는 계속해서 거짓말 꿈으로 할아버지를 찾아갔고, 결국엔 자신의 거짓말로 만들어진 꿈으로 인하여 집이 불에 타 집을 잃게 되었다.
한 아녀자가 시집을 와서 보니 집에 아무것도 없어서 남편에게 다른 집으로 가서 10년간 머슴살이를 해오라고 한다. 10년을 채우고 집으로 돌아가려는 남편은 돈으로 주면 죽는다는 대감의 말을 듣고 제일 비싼 비단으로 죽은 부모의 행상을 만든 것을 받아서 온다. 대감의 말처럼 남편의 제물이 될 위기에 처하지만 결국에는 무사히 비단을 집으로 가져와 논과 밭을 사고 집도 지어서 잘 살았다고 한다.
태봉산이 있었다고 해서 지명이 일대가 모두 태봉골이 되었다. 조선시대 궁궐에서 아이를 낳으면 그 태를 끊어서 태봉에 묻었고, 그래서 그 산을 태봉산이라고 했다. 요즘 사람들은 태봉에 대해서 잘 모른다. 면목동 일대가 모두 동양척식주식회사 소유였고, 그 근처의 동네의 길이 좁은 이유는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이 구획정리를 했기 때문이다.
박재궁 묘역은 경기도 고양시 주교동 박재궁 마을에 있다. 고려 때부터 조성되어 광해군 때까지 300년 간 53위의 묘소와 11위의 제단을 모슨 밀양 박씨 가문의 정신적 뿌리 역할을 하는 장소이다. 이 곳에 묻힌 사람 중 박충원과 박심문은 단종에 대한 충절로 유명한 위인이다. 현재 박재궁 마을은 화려한 묘역과 주택가가 섞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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